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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행을 무너뜨린 조지 소로스

대주주 산타 2023. 8. 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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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소로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이자 현대 금융사의 신화적 존재입니다.

2011년 7월 25일 81세의 나이로 펀드매니저 은퇴를 발표했지만 투자금을 모두 투자자들에게 돌려준 후 가족 펀드(개인 재산)의 형태로 여전히 자금을 운용 중입니다.

그는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유대인 변호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으나 히틀러와 나치들이 유럽을 장악하면서 이들을 피해 살았습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17살 때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혼자 영국의 런던으로 도망쳐, 정착하여 대학을 다니며 철도역의 짐꾼, 여행 세일즈맨, 은행의 수습사원으로 생활을 근근이 이어나갔습니다.

졸업 후 몇 년 간 고생을 하다가 런던에 있는 한 투자은행에 견습 사원으로 취직하여 본격적으로 금융업계에 발을 디디게 됩니다.

조지 소로스는 1956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월가에서 트레이더로 시작하여 뛰어난 주식 종목 선정 능력을 바탕으로 리서치 헤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9년 4백만 불 규모의 작은 헤지펀드를 만들어 운용하면서 펀드매니저를 시작했습니다.

1973년, 소로스는 짐 로저스와 함께 그의 역사적인 헤지펀드인 퀀텀 펀드(Quantum Fund)를 설립했지만 당시 초창기 퀀텀 펀드(Quantum Fund)는 닉슨 대통령의 사임 등으로 인해 주식시장이 폭락했었던 1974년 수익률 부진으로 인하여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짐 로저스와 조지 소로스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온 것인지, 1970년부터 1980년까지 S&P 500 지수가 47% 상승하는데 그치는 동안 4,2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거두었습니다.

 

조지 소로스가 유명한 이유는 파운드화 공매도 때문입니다.

1990년, 영국은 유럽 내 단일통화권 구축을 위해 만들어진 과도기적인 체제인 ERM(환율조정메커니즘)에 가입했습니다.

이에 따라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 대비 상하 6% 밴드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고정이 되었고 밴드에서 벗어날 정도의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영란은행이 즉각적으로 개입해서 파운드화 가치를 안정시킬 의무가 생겨났습니다.

당시 독일은 서독과 동독을 통일하였고 독일은 동독 발전을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하게 되고 막대한 화폐가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분데스방크(독일 연방은행)는 2년 동안 10차례나 금리를 인상하는 초강수를 둡니다.

이에, 마르크화는 강세를 보였고 파운드화의 가치를 밴드 내로 유지하기 위해서 영란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에 비해 경제력이 약했던 영국경제는 실업률이 두자릿수까지 치솟았고 경기는 얼어붙었지만 자존심이 강했던 영국은 ERM 탈퇴 대신 영란은행이 열심히 파운드화를 매수하며 파운드화 하락을 방어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소로스와 스탠리 드러켄밀러 같은 똑똑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호시탐탐 기다리다가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 파운드화의 공매도에 나섰습니다.

당연히 영국은 단기금리를 10%로 인상하며 파운드화 방어에 나섰지만 영국 파운드화가 맛집이라는 소식이 세계에 퍼지면서 영국은 시장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GG를 칩니다.

영국은 1992년 9월 16일 ERM을 나가게 되고 파운드화는 수직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조지 소로스는 '영란은행을 무너뜨린 사나이'또는 '검은 수요일을 만든 자'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결국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헤지펀드 매니저에게 공격에 패배한 영국 정부는 유로화로의 전환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영란은행에서 소로스의 펀드는 엄청난 수익률을 올렸지만 이후 드러켄밀러의 투자 실패로 인한 막대한 손실이 계속됩니다.

바로 1998년 롱텀캐피탈 파산 사태와 2000년 닷컴 버블 붕괴가 그 예입니다.

롱텀캐피털자산은 블랙-숄즈 모형의 창시자 숄즈가 힘을 합쳐 만든 투자전문회사인데, 전세계 채권의 프리미엄/디스카운트를 이용한 차익거래 펀드였으며 출시 3년만에 30배의 수익을 거두는 등 월스트리트에서 승승장구를 하던 투자전문회사였습니다.

하지만 1998년 러시아 채권에 대한 과도한 매입 상태에서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으로 파산하면서 소로스도 손실을 보았습니다.

 닷컴버블을 통해 순식간에 50억 달러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중국증시 버블 붕괴 전까지는 중국 증시에 투자를 많이 했으나, 2015년 중국 증시 버블 붕괴되면서 30억 달러의 손실을 보자 중국 투자를 전부 손절하고 반중 성향으로 돌아선 것도 유명합니다.

손실로 인해 조지 소로스의 명성은 예전만 하지 못하지만 조지 소로스의 영향력은 상당했습니다.

1993년 소로스가 금광을 개발하는 미국의 광산업체의 주식을 매수했다는 소문이 나자 월스트리트의 펀드매니저들이 앞다퉈 관련주식을 매수해 전세계적으로 금이 폭등하는 사태가 있었으며 1996년 1월 도쿄의 세미나장에 나타난 그가 "일본 주가가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한마디 하자 닛케이 주가는 폐장을 앞둔 막판 10분동안 270포인트 이상 급등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편,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태국 바트화를 공격하여 큰 수익을 올렸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IMF로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조지 소로스는 태국에서 경험한 짭짤한 수익을 바탕으로 비슷한 전략을 구성해 대한민국의 원화를 공격했지만 한국인들의 금 모으기 운동으로 위기를 겪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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