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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월가)는 어떻게 금융의 중심지가 됐을까

대주주 산타 2023. 8. 1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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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는 17세기 뉴 암스테르담의 북부 경계선, 즉 성벽을 뜻하는 wall(월)이라는 네덜란드의 말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월스트리트가 생기게 된 배경은 15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프랑스 선박 '라 도핀'호의 선장이었던 이탈리아인 조반니 다 베라치노는 대서양 항해 중에 뉴욕 인근을 지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1609년 9월 영국인인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이 공식적으로 뉴욕 일대를 탐험합니다.

헨리 허드슨은 영국인이었지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이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인도 향로 무역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 '바타비아' 오늘날의 '자카르타'에 본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허드슨은 네덜란드의 지시로 유럽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네시아로 가는 뱃길을 단축시키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북극의 항로를 개척하려고 했지만 북극 바다에 막혀 실패하였고 캐나다 북쪽 바다를 지나는 길을 탐색하기로 하였습니다.

항로를 따라 가던 허드슨은 뉴저지주 남쪽에 있는 케이프 콧을 발견하고 북상행에 위치한 허드슨 강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런 자신의 항로 과정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보고하였는데, 허드슨은 아메리카 동해안에 자원이 풍부하고 인디언들과 교역하기 좋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네덜란드는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을 탐색하고 식민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네덜란드는 1619년 서인도회사에 북아메리카 동부 지역에 대한 면허권을 발급하였고, 네덜란드인들은 남쪽 섬 끝에 자리를 잡고 그들의 수도 이름을 따서 '뉴암스테르담'이라고 정했습니다.

뉴암스테르담을 차지한 네덜란드인들은 인디언들과 모피 거래를 하였고,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뉴욕, 뉴저지, 델라웨어, 커네티컷주를 차지하며 식민도시를 확대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부지역에 세운 식민도시들을 합쳐서 뉴네덜란드라고 명했습니다.

순조롭게 식민사업이 이루어지나 싶었지만, 1652년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가 틀어지면서 전쟁이 벌어졌고, 뉴암스테르담 역시 불바다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뉴암스테르담의 정착지에 살고 있었던 인디언들의 공격으로 골치를 앓았던 네덜란드는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형상 남쪽은 영국군이 상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네덜란드는 북쪽에 방어벽을 쌓기로 하였습니다.

4m 높이의 나무 울타리를 주민과 흑인 노예를 동원하여 섬의 서쪽부터 동쪽을 가로질러 800m 가량 설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영국군의 함대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영국은 땅을 점령하면서 영국 도시인 '요크'의 이름을 따서 해당 지역을 '뉴욕'으로 바꿨습니다.

이후, 1698~1699년 서쪽의 습지를 간척하고 트리니티 교회를 세우고 수십 년 동안 남아 있던 울타리를 철거하면서 방어벽이 있던 거리라는 이름을 따서 '월스트리트'가 되었습니다.

기존에 방어벽(울타리) 근처에 거주하던 네덜란드인들은 해당 지역에서 주식과 채권을 거래하기 시작하였고, 거래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자 자신들만의 규칙을 세우고 거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1783년 뉴욕은 영국의 지배로 독립하고 상공업 발정을 위해 1791년 '미합중국 제1은행'을 설립하였습니다.

은행이 생기자 증권거래가 좀 더 정밀해지고 표준화되면서 안정적인 증권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이후 1817년 '뉴욕 증권 거래위원회'가 설립되고 1863년 '뉴욕 증권거래소'가 생기면서 막대한 금융 자본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필요한 자금이 커지면서 20세기까지 은행 역시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맨해튼과 뉴욕은 비즈지스 행정구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초고층 빌딩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1929년 대공황으로 증권시장은 쇠퇴하게 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빠지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세계 무역 센터를 건설하고 재정적으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힘쓰면서 다시 한번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현재의 월스트리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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